■ NFT, 토큰이 미술품으로 변하는 마법
- 2021년 3월의 어느 늦은 밤, 한국 시간으로 자정에 마감되는 크리스티 경매의 실시간 응찰 상황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마감 시간을 5분 남짓 남겨놓고 출품작을 갖기 위한 열띤 경합이 벌어지며 응찰 횟수는 순식간에 350회를 넘어섰다. 응찰이 끝나기 직전, 더 높은 금액으로 또 한 번의 응찰이 접수되면서 마감 시간이 자동으로 2분 가량 연장됐다. 막판까지 치열했던 작품의 낙찰가는 무려 6,930만 달러, 한화로는 785억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스타 작품이 탄생했지만 이상하게도 작품과 작가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화제에 오른 작품 <매일: 첫 5,000일>은 디지털아트 작가 비플이 13년간 매일 온라인에서 발췌한 이미지를 콜라주해 JPG 형식의 그림 파일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미디어 작품일까? 아니다. 그보다 더 낯선 'NFT'다. 심지어 크리스티는 사상 최초로 작품의 판매 대금을 현금이 아닌 암호화폐 이더리움으로 결제하도록 했다. 비플은 누구인지, NFT는 무엇의 약자이며 무슨뜻인지, 785억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째서 이 작품이 그렇게 비싸게 팔린 건지, 이더리움은 또 뭔지. 무엇 하나 쉽게 이해되는 것이 없던 밤이었다.
다음 날, 각종 매체들은 일제히 이 어렵고 비싼 작품을 소개하느라 분주했고 음성 기반 SNS인 클럽하우스에 모인 미술계 관계자들은 작금의 상황에 대한 분분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사를 읽고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도 머릿속에 달덩이처럼 크게 뜬 물음표가 지워지지 않았다. NFT가 엄청 핫한 키워드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그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대체 불가능한 토큰 Non-Fungible Token'의 약자인 NFT는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을 대표하는 토큰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내 친구가 지금 막 지갑에서 꺼낸 1만 원과 내가 책갈피 사이에 끼워두었던 꼬깃꼬깃한 1만 원은 일련번호만 다를 뿐 가치는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므로 빳빳한 친구의 지폐와 구겨진 내 지폐를 바꾼다 하더라도 완벽한 등가교환이 가능하다. 반편, NFT는 화폐보다는 기념주화에 더 가깝다. 내가 1988년 서울 올림픽 기념주화를 가지고 있고 친구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주화를 가지고 있을 경우 올림픽 기념주화라는 점은 같지만 그 가치가 서로 달라 교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
한 마리도 정리하면 NFT는 '단 하나의 원본'이다. 이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NFT의 핵심 잠재력은 희소성의 가치, 즉 유일성에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들은 원본과 사본의 구별 없이 무한 복제되지만, 여기에 NFT를 적용하면 원본 영상에 기록된 디지털 서명으로 수많은 사본들 중에서 원본을 구별해낼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점을 이용해 인터넷에 떠도는 유명한 사진이나 영상 속 주인공이 원본을 NFT로 발행하고 경매에 부쳐 벼락부자가 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NFT로 태어난 디지털 자산들은 최초 발행자의 정보와 함께 소장자가 바뀔 때마다 그 거래 이력이 블록체인으로 기록된다. 또한 NFT를 새로운 NFT로 복사하더라도 기존의 NFT와는 다른 꼬리표가 달리기 때문에 진품과 구별할 수 있다. 즉, NFT는 일종의 '족보' 기능이 결합된 유일무이한 디지털 자산인셈이다. NFT가 가진 희소성이라는 특징은 미술품에 찰떡같이 적용된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창작자의 정보 덕분에 애초부터 위작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디지털 프로비넌스'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물리적 설치 장소와 별도의 운송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 온라인으로 전송되므로 직거래가 가능하다는 점 역시 디지털 파일로 존재하는 NFT 작품의 두말할 나위 없는 장점이다.
어느새 NFT는 미술 시장의 강력한 치트키가 되어 빠른 속도로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 2021년 현재 세계적으로 거래되는 NFT 자산의 규모는 2018년에 비해 여덟 배나 증가했다. 그사이 미술계에서 NFT를 두고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는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였다.
국내의 블록체인 기업들도 NFT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시장 키우기에 발 벗고 나섰다. 2021년 5월 국내 최초로 NFT를 거래하는 마켓이 등장했다. 이는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이 개설한 마켓으로, 이곳에 등록된 NFT 작품은 입찰 형식으로 판매되며 지불 수단으로는 이더리움을 사용한다. 작품의 주인이 바뀌며 재판매될 때마다 원작자에게 로열티가 지급되는 구조다.
그렇다면 우리는 NFT라는 새로운 문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시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NFT의 가용 범위를 막연히 이해하고는 있지만,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시장이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현재 NFT 시장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이 얼마에 팔렸는지보다는 실물 작품과 NFT 작품의 정확한 가치 산정이다.
NFT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는 소유권과 저작권 문제다. 최근 한 글로벌 마케팅 기업이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작가의 실물 작품을 NFT로 전환해 경매에 출품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해당 작품의 저작권자들이 이번 경매에 관해 어떠한 협의도 한 적이 없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국내 현행법상 저작권 보호 기간은 저작자의 사후 70년으로, 현재 이중섭 작가의 저작권은 만료됐으나 박수근 작가 작품의 저작권은 박수근미술관이, 김환기 작가 관련 상표권 및 지적재산권 일체는 환기재단이 보유하고 있다.
그 옛날, 낭만주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사조가 나타났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훗날 미술사에 NFT 작품에 대한 정의가 어떻게 남겨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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